촛불집회 이야기 - (1) 촛불의 탄생
서론 : 이념 과잉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이념 과잉의 시대! 누가 처음 한 말인지는 몰라도 최근의 세태를 잘 표현하는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어디를 가나 이념이 넘치고 해석이 넘친다. 신문에서, TV에서, 그리고 인터넷에서 유명한 교수님 박사님부터 이름없는 인터넷 논객까지 각자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사건을 해석하느라 바쁘다.

 이런 현상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자유로워졌고, 또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여론 형성에 참여할 만큼 시민의식이 깨어나고 있다는 증거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는 다른 한편으로는 이념 과잉이라는 보이지 않는 괴물을 낳았다.

 이념 과잉. 사건을 사건의 있는 그대로, 현실을 현실 그대로 보는 대신 이념에 현실을 끼워맞추고,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는 무서운 괴물이다. 이념 과잉의 괴물이 퍼진 사회는 의견은 있되 소통은 없고, 논쟁은 있지만 합의는 없다. 제각기 자신의 주장이 절대선임을 증명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최근 한달 반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군 촛불 집회는 이러한 이념 과잉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촛불집회에 대한 선악 판단은 뒤로 미루도록 하자.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요 40여일간의 촛불집회를 이념에 따라 '해석' 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지만 정작 촛불집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분석' 하는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로 적었다는 사실이다. 한편에서는 새로운 광장 민주주의에 대한 찬가가 울려퍼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냉소와 노골적인 혐오감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우리가 정말 생각해야 할 많은 문제들은 은폐되거나 심지어 금기시되었다.

 먼저 한가지 확실히 해두자. 나는 결코 이념 과잉의 시대에서 자유롭지 않다. 나 역시 이념 과잉을 부추기고, 또 그 안에서 제멋대로의 해석을 해온 한 사람의 네티즌이다. 어쩌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이념 과잉의 괴물에 사로잡혀 쓰는 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사 그 괴물에 사로잡혀 있더라도, 그 괴물을 물리치려는 노력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그 괴물이 출몰하는 사회에 살 수 밖에 없을지라도 스스로가 그 괴물이 되어버리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니체의 말대로 우리는 괴물과 싸우다 괴물을 닮아버려서는 안된다. 따라서 이 글은 이제 막바지에 들어선 촛불집회를 차분히 되돌아보고 그 경과와 의미를 살피기 위한 글이다. 동시에 나 자신을 반성하는 글이기도 하다. 물론 어리석기 짝이 없는 내 능력으로 얼마나 촛불집회라는 거대한 '사건' 을 다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촛불의 탄생을 말해야 하는 이유

 촛불집회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이 일단 촛불집회를 '당연한 것' 으로 간주하고 논리를 펼쳐나가고는 한다. 촛불집회에 긍정적인 사람이나 부정적인 사람이나 이 점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번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촛불집회가 당연한가? 한달이 넘도록 대규모 군중집회가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일이 당연한 일인가? 최대 수십만의 사람이 모이는 게 일상적인 일인가? 당연히 아니다. 촛불집회는 당연한 일이 아니고, 일상적인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이는 아주 특별하고 희귀한 사건이다.

 우리는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촛불집회라는 비일상적인, 어쩌면 비정상적인 사건이 하필이면 2008년 5월 초에 일어난 이유를, 그 촛불집회가 한달 넘게 지속된 이유를 물어야 한다. 촛불집회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순간 촛불집회는 하늘에서 떨어진 초역사적인 사건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2008년 5월 이전과도 무관하며, 어쩌면 2008년 6월 이후와도 무관한 2008년 5월 초부터 6월 중순까지의 초역사적인 단절공간 속에서 일어난 사건인 양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 촛불집회는 결코 초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MBC, KBS와 같은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나 광우병 대책위와 같은 몇몇 집단의 과장된 선전선동에서 촛불집회의 원인을 찾으려 한다. 일면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잠시 아래의 사진을 봐 주기 바란다.

 촛불집회다. 최근 많이 찾아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촛불집회 사진이다.  저기 민주노동당 깃발도 보이며 앞쪽에 여고생도 한명 보인다. 그리고 이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미국산 쇠고기 반대, 광우병 쇠고기 반대를 외치고 있다. 이 사진은 언제 찍힌 사진일까?

 정답을 공개한다. "노무현 닥쳐!" "시끄러 노정부" 라는 말이 보인다. 놀랍게도 위의 두 사진은 2006년 가을에 찍힌 사진이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운동도 광우병 괴담도 현 정부 들어 새로 생긴게 아니다. 미국산 쇠고기를 둘러싼 논쟁과 광우병 괴담은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더 정확히는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를 추진한 순간부터 있었다.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역시 존재했다. 물론 그때는 조선일보나 동아일보가 "광우병 공포 확산 한국 안전지대 아니다" / "뭐? 미국산 늙은 쇠고기 한국만 먹는다고? 일본은 20개월, 한국은 30개월 미만 수입 7월 쇠고기 협상 때 사육기간 더 낮춰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썼지만 어쨌든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몇몇 집단들의 계획적인 선동, 광우병에 대한 괴담 이 모두가 노무현 시절 존재했던 것들이다.

 이것이 바로 촛불의 의미에 앞서 촛불의 탄생을 말해야 하는 이유다. 촛불집회는 2008년 5월에 발생해야 할 어떠한 역사적 필연성이 있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노무현 때 발생했을수도 있고, 반대로 아직까지 이러한 범국민적인 저항을 불러오지 않았을수도 있다. 따라서 촛불집회의 진상과 그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촛불집회라는 비일상적인 사건이, 왜 하필 2008년 5월에 발생했는지 그 이유를 규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집회는 왜 발생하는가 : 발상의 전환

 촛불집회가 일어난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는 많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선동가들을 배후로 지목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대운하나 민영화 같은 MB정부의 정책에서 시민들의 불만을 찾기도 한다. 혹은 한국인들의 민족주의적 감정, 반미감정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그 외에도 대통령제라는 제도 그 자체의 결함, 양극화로 인한 서민들의 불안감, 인터넷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의 등장 등이 촛불시위의 원인으로 지목되고는 한다.

 하나같이 그럴듯한 설명이다. 광우병의 공포에 대한 과장된 선동이나 무책임한 방송이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웠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MB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개혁' 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은것도 사실이다. 민족주의나 반미감정 역시 이번 사태와 무관하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설명도 촛불집회가 2008년 5월 초에 발생하여 한달 이상 지속된 원인을 말해주지는 못한다. 앞서 말했듯 선동가도, 무책임한 언론도 새로울 게 없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반대 목소리, 양극화에 대한 우려는 김대중 전 대통령 때부터 있었다. 민족주의는 일제시대때까지도 소급해 올라간다. 인터넷 세대의 등장이라는 말 역시 2002년때부터 꾸준히 언론에 오르내렸다. 

 과연 진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무엇이 '촛불집회가 2008년 5월 초에 발생하여 한달 이상 지속된 원인' 을 말해줄 수 있을까. 정답은 발상의 전환에 있다. 원인을 한두가지 요인에서 찾는 게 아니라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그리고 일종의 위계를 가지고 누층적으로 작용한 데서 촛불집회가 발생한 원인을 찾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촛불집회 발생의 원인이다. 토양 - 배경 - 사건의 삼분체제. 촛불 탄생의 이유, 촛불집회가 하필이면 2008년 5월 초에 시작되어 한달 이상 지속된 이유가 이 그림속에 담겨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촛불집회가 상당히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또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러나 그 요인들이 일정한 위계를 가지고 누적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지적한 사람은 거의 없다.(적어도 내가 아는 바 한명도 없었다.) 촛불집회가 가진 '복합성' 이 잘 머리에 안 들어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러 요소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무했던 것이다.

삼분체제 : 토양

 그렇다면 이번 장에서는 이 삼분체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가장 먼저 살펴볼 부분은 가장 아래쪽에 있고, 또 가장 넓은 부피를 차지하고 있는 토양의 영역이다. 토양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한국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일련의 공통된 정서나, 국민성(만약 그것이 존재한다면), 혹은 한국사회가 안고있는 몇가지 근본적인 문제들을 통틀어 말한다. 토양이라는 말 그대로 한국사회가 밟고있는, 한국인들이 자리하고 있는 현실 그 자체를 폭넓게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토양의 종류는 여러가지가 있다. 정치적 토양도 있고, 사회경제적 토양도 있으며, 제도적 토양이나 문화적 토양도 있다.

 정치적 토양은 크게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내적인 것은 국민들의 정치 불신, 청치인들에 대한 극도의 혐오다. 이념과 성향을 떠나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은 한국인 대다수가 공유하는 정서다. 반면 외적인 것은 외국, 특히 강대국에 대한 저항 의식이다. 이는 단순히 '반미'나 '반일'이라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개항 이후 100여년간 일본, 중국, 미국, 소련과 같은 주변 강대국들에게 휘말린 역사적 경험에서 오는 본능에 가까운 저항의식이기 때문이다. 한반도기를 흔들며 미군 철수를 외치는 좌파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무기 보유 시도를 긍정하며 핵무기를 갈망하는 우파나 저항의식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성을 가진다.

 사회경제적 토양의 핵심으로는 교육문제와 양극화 문제를 들 수 있다. 교육문제는 수십년간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지만, 아직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한국사회의 만성 질병이다.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 사교육의 증가와 공교육 붕괴, 학생들의 불만과 학부형들의 사교육비 부담 - 이제는 한국 사회의 일상처럼 느껴지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경제문제는 한둘이 아니지만 일단 현 시점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는 양극화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고전적인 질문도 양극화 문제 앞에서는 힘을 잃을 정도로 양극화는 한국 사회(어쩌면 전 세계)의 보이지 않는 시한폭탄이 되어있다.

 마지막으로 살필 부분은 제도적 토양과 문화적 토양이다. 전자는 강력한 대통령제와 약한 정당정치를, 후자는 인터넷의 보급화와 자발적 여론 형성의 공간 선립을 지적하고 싶다. 대통령이 한번 당선된 이상 탄핵이라는 비상수단을 제외하고 대통령의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현행 대통령제는 시위대와 청와대의 무한 대립을 심화시킨 측면이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인터넷의 보급과, 쌍방향 소통에 익숙한 젊은층의 대두, 블로그스피어로 상징되는 자발적인 여론 형성 공간의 창출은 2002년 이후 한국사회가 보여주는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삼분체제 : 배경

 토양 위에는 배경이 있다. 토양이 한국사회가 가진 특징과 한국인들의 자화상을 보여준다면 배경은 시간적 의미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현 촛불집회의 배경은 2008년 들어선 이명박 정부와, 최근의 국제 정세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대규모 촛불집회가 2006년 가을이나 2007년 여름이 아닌 2008년 늦봄에 일어난 시간적(역사적?) 이유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촛불집회의 일차적인 배경은 이명박 정부 스스로가 만들었다. 한반도 대운하 공사계획, 영어 몰입교육과 자사고 확충으로 대표되는 교육정책, 각종 복지예산의 축소 움직임, 급진적인 민영화 추진, 비지니스 프렌들리란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친재벌적 움직임,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라는 비판을 받은 내각 인선까지. 하나같이 국민 정서를 자극할만한 것들이었다. 거기다 일명 '오륀지 발언' 과 같이 인수위 시절부터 보여온 각종 말실수나 일이 커지면 오해라고 변명하는 미숙함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의 실책이 아니더라도 이명박 정부를 싫어하는 이들이 상당수 존재해왔다. 어느 정부인들 싫어하는 이들이 없겠냐마는 이명박 정부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난 대선때부터 인터넷을 중심으로 Anti-MB / Anti-한나라당 여론이 무시하기 힘들 정도의 위세를 떨쳐왔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라. 이번 촛불집회로 인해 새로운 '성지' 로 떠오른 다음 아고라의 경우 작년 초부터 MB와 한나라당에 대한 적대감을 보여왔다. 한마디로 어떻게 해서든 MB를 끌어내리고 싶어하는 이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해온 것이다.

 혹자는 "노무현 시절에도 초반부터 그를 미워하는 세력이 존재했었다." 고 되물을 지 모른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에는 적대감의 대상이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메이저 언론이었다는 점에서 MB와 다르다. 영향력 자체만 놓고 보자면 조중동쪽이 강할지 몰라도 인터넷을 통해 급속하게 여론을 전파시키는 데는 아고라나 이글루스 같은 인터넷 공간이 유리하다.


 고유가라는 국제적인 흐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배경이다. 아무리 이명박 대통령이 강부자 내각을 꾸리고, 인터넷에서 MB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서민 경제가 살아난다면 대규모의 Anti - MB 여론은 발생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MB였음에도 고유가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고, 정부의 어설픈 환율 정책은 위기를 키웠다는 지적마저 받고 있다. 이제 몸으로 느껴지고 눈으로 볼 수 있는 물가 상승은 서민경제에 막대한 부담을 주고 있으며,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다시 MB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게다가 "다른 건 몰라도 경제만은 살리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된 MB이니만큼 경제 위기에 대한 불만은 곱절로 클 수 밖에 없다.

삼분체제 : 사건

 드디어 삼분체제 피라미드의 정상까지 왔다. 정상에 위치한 것은 사건이다. 토양은 사실상 한국사회라면 항상 존재해 온 요소고, 배경 역시 이것만으로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명박을 탄핵시켜야 한다, 이명박을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은 MB가 대통령에 당선된 순간부터 있어왔다. 일부 네티즌들이 BBK의혹 등을 제기하며 MB의 당선 무효, MB탄핵을 외쳐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MB에 대한 불신이 깊다 한들 그 불신이 바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불신이 바로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분노한 국민들에 의해 강제로 물러나고도 남았다.

 한마디로 촛불집회가 2008년 5월에 '터지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불을 붙혀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불을 붙힌 게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있다. 바로 MB정부의 쇠고기 협상과 그 뒤를 이은 연이은 미숙한 대처다. MB정부의 쇠고기 협상에 대해서 "사실 그다지 졸속협상은 아니다." 라는 주장도 있지만, 미국 방문에 맞추어 갑작스럽게 협상 타결이 이루어진 점이나, 소위 '오역 파동' 과 같은 어이없는 실책을 저지른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졸속협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설사 쇠고기 협상이 졸속협상, 굴욕협상이 아니라 할지라도 국민들이 그렇게 받아들일 여지는 충분하다. 

 미국산 쇠고기를 둘러싼 여론이 나빠지고, 초기 촛불집회가 발생한 뒤 MB정부가 보인 반응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해라"는 대통령의 발언부터, "시위에 나온 사람들은 실업자들" 운운한 이상득 의원의 말. 뉴라이트 인사의 맥도날드 발언까지 하나같이 시민들의 분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특공대 투입이나 물대포와 같은 불필요할 정도의 강경진압을 강행하여 시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비유하자면 토양은 나무가 우거진 숲이고, 배경은 산불이 나기 쉬운 건조한 봄이나 가을이다. 마지막으로 사건은 그 건조한 숲에 불을 붙힌 행위라 할 수 있다. 나무만 있다고 산불이 아는 건 아니다. 또한 비오는 날이라면 산불이 난다 해도 곧 꺼진다. 단순히 건조한 날씨라고 해서 산불이 나는 것 역시 아니다. 불이 붙고 번지기 쉬운 숲(토양),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배경), 거기에 누군가의 방화(사건)가 일어나는 순간 불길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번지게 된다. 이번 촛불집회가 이와 같다. 

집회의 발생 과정

 여태까지 대규모 촛불집회가 왜 2008년 5월에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논해 보았다. 그리고 촛불집회의 발생 원인은 토양 - 배경 - 사건 으로 이어지는 피라미드형 삼분체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 촛불집회가 한달 이상 지속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저 "정부의 무능" 이라고 잘라 말할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딘지 부족해 보인다. 삼분체제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삼분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규명하는 일이다.

  나는 두 가지 가설을 제기하고 싶다. 가설이니만큼 현실에 100%맞을 거라는 확신은 못한다. 개인적으로 한 80%정도 이번 촛불집회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 가설의 첫번째는 "불만은 아래로부터 누적된다." 이다. 불만은 토양에서 시작한다. 당연한 일이다. 부모라면 누구나 사교육비 부담을 느낄 것이고, 한국인이라면 주변 강대국들의 유/무형 압력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정치인들을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도 신문 정치면을 펴면 욕부터 나오는 게 현실이다. 다만 토양 영역에서의 불만은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그 '불만' 의 성격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뀌겠지만 말이다. 예컨데 60년대에는 '절대 빈곤' 이 불만이었다면 현재는 '양극화' 가 불만인 식이다.

 그리고 토양 영역의 불만 위에 배경 영역의 불만이 쌓인다.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불만은 MB정부 때에나 가능한 불만이다.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부를 아무리 싫어하던 사람이라도 그가 영어 몰입교육을 추진했다는 비난은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다. 고유가, 고물가에 대한 불만 역시 국제유가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오르고 있는 현 시점이기에 터져나오는 불만이다. 결국 토양 영역의 불만이 어느 정부에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면, 배경 영역의 불만은 '이명박 정부 시대' 라는 특정 시점, 바로 이 시점에서 찾을 수 있는 불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MB정부는 배경 영역에 불만이 쌓이는 걸 방치했을 뿐 아니라, 조장하기까지 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무능하고 한심했다는 말 외에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다. 

 배경 영역까지 불만이 쌓여있으면, 어떤 방법으로든 그게 터질 위험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노무현 때에도 조금 아슬아슬했던 것이 한미FTA 반대 집회나, 부안 사태가 자칫 잘못하면 이번 촛불집회와 같은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번질 가능성이 있었다. 좌우간 배경 영역까지 올라온 '불'만에 결정적으로 기름을 부은 건 말할 나위 없이 쇠고기 협상과 정부의 집회 대처 방침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불만은 쇠고기 협상과 같은 특정 사건을 계기로 사건 영역까지 뚫고 올라오게 된다. 불만이 토양 영역부터 누적되여 배경 영역을 거쳐 사건 영역에서 폭팔한 셈이다. 배경 영역까지 그저 사무실 잡담이나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던 불만은 본격적으로 거리로 쏟아진다. 시민들의 요구사항은 촛불과 깃발로 표현되며 기존의 제도적 장치(의회 등)는 무력해진다. 이것이 바로 대규모 집회가 일어나는 한편의 과정이다. 한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누적적인 불만의 축적과 특정 계기를 통한 폭발" 정도가 될 것이다.

집회의 전파와 유지 과정

 드디어 마지막 질문 두가지 - "왜 집회가 그렇게 장기화되었나?" 그리고 "왜 그리 많은 시민들이 집회에 동참했는가?" - 에 대해 답할 시간이다. 그리고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은 앞서 이야기한 두 가설 중 둘째 가설에서 찾고 싶다. 즉 불만이 누적되어 사건을 통해 폭발한다는 게 첫째 가설이라면, 둘째 가설은 집회의 진행과 함께 그 불만이 다시 아래쪽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이번 촛불집회를 돌이켜 보자. 5월 초부터 40일 가량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그 40일동안 집회의 성격은 끊임없이 변해왔다.(그 변화상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초기에는 주로 학생들이 주도했으며, 집회 장소도 청계천 부근을 벗어나지 않았다. 언론 역시 집회를 그다지 크게 다루지 않았으며, 집회에 호응하는 여론도 거세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학생들이 좋은 일 하는구만." 정도가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었고, 관심 자체가 없는 사람도 꽤나 존재했을 것이다. 또한 초기의 주제는 철저하게 광우병과 미국산 쇠고기었다. 교육 문제, 대운하 문제가 나왔지만 그건 부차적이었고, MB탄핵 같은 말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터져나온 불만은 '미국산 쇠고기 협상' 이라는 사건 영역에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촛불집회가 청계천을 넘어 시청 앞 광장으로, 광화문으로, 심지어 청와대로 향하기 시작했다.(솔직히 말하자면 그 계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나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리고 촛불 집회에 참석하는 대학생과 직장인이 늘어났으며, 요구사항도 쇠고기 재협상 뿐 아니라 민영화 정책 폐지, 대운하 반대, 교육정책 재검토로 범위가 넓어졌다. 동시에 촛불집회에 대한 참여와 지지 여론이 강력하게 일어났고, 언론에서도 연일 촛불집회를 크게 다루었다. '광우병 괴담' 의 설득력 약화와 더불어 촛불이 꺼질 거라는 일각의 예측과 달리 촛불집회는 더욱 힘차고 더욱 강하게 거리를 가득 매우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간단하다. 불만이 사건 영역을 넘어 배경 영역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더이상 촛불집회의 화제는 '미국산 쇠고기' 에 그치지 않는다. 대운하도 민영화도 교육정책도, 친 재벌 성향도, 언론 정책도, 물가 상승으로 인한 생활고도 모두 촛불집회의 화제가 된다. 나아가 경찰의 강경 진압과 맞물리며 '폭력경찰 처벌' 이나 '과잉진압 규탄' 도 새로운 화제가 되어 시민들의 입에서 "폭력경찰 물러나라!" 와 "이명박은 물러나라!" 라는 구호가 나오기에 이른다. 불만이 배경 영역에서 표출됨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각종 정책에 비판적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노무현 정부 때 일어났던 한미FTA반대집회와 비교해 보면 이번 촛불집회의 특징이 더 잘 보인다. 그때는 FTA반대 움직임이 노무현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한 불만, 비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집회 주도자들이 한미FTA반대를 노무현 정부 반대, 나아가 신자유주의 반대로까지 확장시키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그 결과 한미FTA 반대집회는 꽤나 오랫동안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폭발적인 힘을 보여주지는 못했고 그저 '그들만의 집회' 로 쓸쓸히 막을 내렸다. 그때도 촛불은 켜졌지만 그 촛불은 한미 FTA 협정 체결이라는 사건 영역에서 맴돌다(그리고 배경 영역을 기웃거리다) 꺼져버렸다. 반면 이번 촛불집회는 처음에 사건 영역에서 불만이 표출되었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배경 영역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토양 영역으로까지 불만이 전파되었다.

 쇠고기 협상에서 폭발한 불만이 토양 영역까지 도달해, 그곳에서 표출되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현충일 이후의 소위 72시간 릴레이 촛불집회와 6월 10일의 대규모 촛불집회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그건 거의 축제에 가까웠다. 쇠고기 문제도, 대운하 문제도, 민영화 문제도, 고유가 문제도 모두 나왔다. 정치인 전반에 대한 불신과 미국에 대한 비판, 각종 사회 모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 역시 함께 나왔다. 그야말로 시민들이 가지고 있던 각종 불만이 동시에 터져나온 거대한 광장이었다. 쇠고기 문제는 물론 '가장 중요한' 문제일지는 몰라도 더이상 유일한 문제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불만의 하강 현상은 집회의 힘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배경 영역은 물론이고 토양 영역의 각종 불만까지 일순간에 표출되며 촛불집회의 '중심' 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72시간 연속 집회애 국민MT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촛불집회는 비교적 단일성을 가진 정치적 집회에서 '쇠고기 수입 반대' '이명박 정부 비판' 등의 몇가지 주장만을 공유하는 시민들의 느슨한 문화 축제로 변해버린 것이다. 6/10일의 대규모 집회와 6/13일의 미선 효순 추모집회 이후 촛불집회의 기세가 급속하게 꺾인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촛불집회의 규모가 커지고, 그 구성이 다양화된 나머지 자체 통제력을 잃고 스스로 해체되어버린 것이다.

결론 : 촛불의 탄생

 촛불의 탄생과, 촛불시위의 경과를 바라보는 내 생각은 한마디로 "토양 - 배경 - 사건 의 삼분체제론" 이다. 불만은 토양에서부터 배경으로, 또 배경에서 사건으로 누적되며 특정 사건(들)을 계기로 하여 행동으로 표출된다. 또한 그 표출된 불만은 이제 반대로 사건 - 배경 - 토양 순으로 하강하게 된다. 불만 표출의 범주가 넓어짐에 따라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 역시 늘어나지만, 이는 동시에 집회의 통일성을 약화시키고, 마침내 집회 스스로를 와해시키기에 이른다. 

 아직까지 촛불집회의 결말에 대해 장담을 하기는 조심스러운 시점이지만, 적어도 더 이상 촛불집회는 6/10일에 그랬던 것과 같은 대규모 집회로 커지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미 시민들의 불만이 배경 영역 이상까지 차올랐고, 또 촛불집회가 토양의 영역까지 확장된 만큼, MB정부 내내 언제라도 대규모 촛불집회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지적해 두고 싶다.

 길었다. 읽는 사람도 길었겠고, 쓰는 나에게도 길었다. 드디어 이 긴 여정을 끝낼 때가 왔다. 몇몇 사람은 내 생각에 동의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그럴듯하다고 느낄 것이며, 틀렸다고 생각할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좋다. 그저 이념 과잉의 시대 속에서 촛불집회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나로서는 만족이다.
by 이녁 | 2008/06/18 01:43 | 무 거 움 | 트랙백(1) | 덧글(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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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촛불집회..이야기
[연속기획] 촛불집회 이야기 : (1) 촛불의 탄생...more

Commented by Dalpang-e at 2008/06/18 01:56
시위의 양상이 청계천 밖으로 나오게 된 배경에 그 시기 이명박 대통령의 어떤 행동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기억을 하지 못하는데, 그게 기폭제가 되지 않았나 하고,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아레스실버 at 2008/06/18 09:37
그때가 5월 31일로 청계광장에서 진압이 이루어졌기에 청계광장의 지리적 단점을 깨달은 사람들 & 과잉진압에 촉발되어 추가된 대인원으로 광화문을 점령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요일까지만 해도 아직 청계광장이었는데 일요일 새벽에 경찰이 사람들을 몰아서 신촌에서 잡는 작전을 펼쳤었죠. 제 기억이 맞다면 역시 경찰의 과잉진압이 촉발제가 되겠습니다.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6/18 14:11
신촌은 5월 22일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대포 등장은 5월 31일이었구요. 꽤 텀이 있었는데, 신촌 이후에 오히려 청와대로 가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죠.
Commented by Lectom at 2008/06/18 02:10
촛불집회 관련 종합세트를 본 기분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 ^;
Commented by 이녁 at 2008/06/18 02:14
아니야. 너무 길어. 적어도 1/2로 쪼갰어야 하는데 ㅠㅠ 아무도 안 읽을꺼야 ㅠㅠ

허엏ㄴ엉허허엃 ㅠㅠ
Commented at 2008/06/18 02:2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이녁 at 2008/06/18 02:22
200자 원고지 60장 밖에 안되네요 ㅎㅎ
Commented by fulldream at 2008/06/18 02:30
사실 촛불집회는 이녁님이 지적한 것 처럼 몇 년 전부터 이뤄져 왔던 일이었으나 참여하는 인원이 많지 않았으며,
기존 언론들도 촛불집회에 관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잇다른 실정을 보여왔으며, 국민과의 소통이 점점 단절되가는 모양새를 보이면서 점차로 촛불집회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으며, 지난 4월 미국쇠고기 협상 타결 이후 조금씩 탄력을 받았고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방송이
기폭제가 되어 대규모의 촛불집회 인원이 모이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촛불집회에 모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집회가 새로운 양상을 보이면서 언론에서도 주목을 받고
촛불이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하지만 촛불집회에 모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대규모의 인원이 모이는 촛불집회가 40여일 이상 지속되면서 주제가 점점 다양해지고... 이로 인한 피로증과
의견 혼선이 다소 보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여하튼 촛불집회로 인해 현 정권이 잘 못 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는데 의의가 있으며,
그동안 잘 펼치지 못했던 조중동 불매가 현실화 되었다는 점, 언론의 소중함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여집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지난 4월 총선 이전에 불붙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국민소환제 등을 시행하지 않을이상 국민들이 꺼낼 수 있는 카드는 한정적이죠)

암튼... 이번 촛불시위가 얼마나 반향을 일으킬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정부의 언론장악에 어느정도 방어할 수 있을 만큼 버텨줬으면 좋겠군요.
아울러 국민의 힘이 무섭다는 걸 반드시 보여줘야 그래도 국민을 좀 두려워할게구요...

//Dalpang-e
이겁니다. 쇠고기 협상 타결 이후 현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값싼 미국쇠고기 수입한다는데...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된다"와 같은 발언을 합니다. 이게 상당한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8/06/18 02:48
음.. 글 자체를 떠나서 분석틀이 대단하군요. 토양, 배경, 사건이라.. 사실 기본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저렇게 조리있게 엮어서 분석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일텐데요.

그나저나..맨 밑에 사진이 다소 깨는 듯.. 취업사관학교 경동대학교라니.. 아무리 요즘 대학교가 취업학교로 바뀌었다지만 저렇게 노골적일 줄은..;;
Commented by 어떤 맥잡 at 2008/06/18 03:45
음, 글 내용이야 다른 분들도 많이 말씀하시겠지만, 그림 같은거 하나하나 까지 신경쓰셔서 열심히 쓰신 것 같아서 대단함을 느껴요.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at 2008/06/18 05:3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lumi at 2008/06/18 06:30
확실히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에 묻혀있던 모든 불만이 다 터져나오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점점 그 영역이 쇠고기졸속협상->MB정권의 실책->지금껏 묻혀있던 한국사회에 대한 불만이 되가고 있었지요. 프리티벳과 동성애자 차별 철폐 이야기도 나왔었답니다 @_@
앞으로 어찌될지야 모르겠습니다만, 정권이 계속 바보짓을 하며 "잊을까 무섭게 하루하루 새 기름을 부어준다" (잊을만하면도 아니라...)는 현 정책(?)을 유지하는 한 시민들의 촛불집회 참여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것 같습니다. 확실히 피곤해져서, 혹은 주최측의 태도에 실망해서 대규모 집회에는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방식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알게 되었으니까요. 물론 홀로 하는 일은 집단으로 하는 일보다 더욱 오래 가기 힘든 경향도 있습니다만(외로우니까효) 이대로 계속 정치라는 게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 내 영역을 건드린다는 위기감을 계에에에속 자극해준다면 조용히나마 계속되긴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토양도 배경도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요(랄카 변화시키려고 해도 어려운 부분인데 그럴 생각은 전혀 없는거 같으니.. /먼산)

좋은 분석 잘 읽었습니다. 노무현 탄핵이나 효순미선이때 일 말고도 촛불집회가 계속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네요. 2부 기대하겠습니다 :D
Commented by Frey at 2008/06/18 09:14
한줄 요약: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다 (...)
Commented by 나가다. at 2008/06/18 10:57
정확하게 말하면 한나라당 때문이다가 맞을듯..
처음부터 30개월 미만을 수입했어도 마찬가지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겁니다.
물론 노무현이 체결한 fta, 이라크파병, 미국산소고기 재개등을 한나라당으로 대통령이된 누가 했어도 마찬가지로 난리가 났을테죠.
노무현이 이런 일렬의 친미, 세계화 정책을 펴도 나라가 잠잠했던건 지지세력층이 정책의 반대 세력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대세력들은 위의 정책들을 찬성하는 편이었고요...
이명박 반대세력이 이렇게 결집해서 여론을 주도한건 어쩌면 이 방법밖에 없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대통령 한나라당, 국회 과반수 넘어서 삼분의이 보수세력, 지방의회등 시장등 한나라판.. 제도적으로는 도저히 한나라당을 흔들수 없어서 일어난 일이죠..

Commented by 캐안습 at 2008/06/18 09:18
노통장적에는 불멸의 프리온교가 이렇게 퍼지지 않았으니까요.

촛불시위가 이렇게 확산된 거에는 불멸의 프리온교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거 부인할 사람은 드물 겁니다.
불멸의 프리온교는 지금도 꼬꼬마중고딩으로 시작해서 인터넷을 모르는 80줄 노인네까지 신도 계층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미국산 쇠고기 집었던 젓가락으로 다른 음식 가득 담은 다라를 휘휘 젓고 그 음식 먹으면 100% 광우병 걸려서 죽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죠. 덤으로 잠복기는 100년이며 자손에게 유전도 된됩니다. ㅎㄷㄷ)
Commented by 하이에나 at 2008/06/18 14:33
전 반대로 이명박 정부의 과잉진압때문에 촛불문화제가 시위로 번졌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프리온교가 위세를 떨치던 촛불문화제는 주로 중고딩 위주의 소규모 인원이었죠. 그런데 과잉진압이후로 사람들이 '이래서는 안된다' 싶어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나오게 되었고 구호도 '협상무효'에서 '이명박은 물러가라'로 바뀌었죠.
Commented by zolpidem at 2008/06/18 09:25
잘 읽었습니다.
차분한 '분석'이 희귀한 시절에,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감자부침개 at 2008/06/18 09:56
1. 5월 25일 무력 진압이 마지막 방아쇠였습니다.

촛불시위에 대한 무력진압이 그 이전에 없었던 건 아닌데(다른 토양들과 마찬가지로) 시민들이 보통 무력 진압에 대해서는 "폭력시위하는 빨갱이 새퀴"에 대한 "정당한 법 집행"으로 받아들였습니다만, 이번에는 "평화로운 시민"에 대한 "부당한 과잉진압"으로 받아들였고,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폭발적으로 규모가 커졌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원인에는 무력진압의 대상에 소위 "운동권"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다수 끼어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운동권놈"들이 두드려 맞건 말건 남의 이야기입니다만, 멀쩡한 시민이 두드려 맞으면서 맞는 사람들에게 감정이입이 일어났어요. 이날 이후 "폭력-비폭력"프레임이 정착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2. 이미지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97년 대선에서 이회창이 당선되었더라면 정리해고 도입, 기업 해외 매각등의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기 어려웠으리라는 시각이 꽤 많습니다(저도 동의하구요).

지금이야 노무현은 모든 일의 근원인, 전지전능한 인물이 되어버렸습니다만(퇴임 이후의 내각 구성에도 힘이 미친 모양이더군요) 대통령이 되기 이전 노무현은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면서까지 노동자-서민 편에서 싸워왔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인 만큼 "ㅆㅂ 저놈 하는 일이 마음에 안들긴 하는데, 악의는 없을거야"라는 막연한 기대랄까 하는게 있습니다. 노무현이 무능하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차고넘치고, 사기꾼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습니다만 악당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아요.
이명박의 이미지는 한나라당 사장님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사장님이란 직원들이 뺑이치는 동안 룸싸롱에서 술마시는 존재에요. 혹은 직원들이 허리띠 졸라매서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해놓으면 회삿돈 들고 튀어버리는 존재입니다. 뭐 이런 뉴스나 소설에서 나올만한 예를 들지 않더라도, 회사가 어렵다면서 월급을 안올려주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벤트 몰고 다니는, 혹은 직원들이 칼퇴근하면 방방 뛰면서 정작 자기자신은 회사에 잘 붙어있지도 않는 사장님은 차고 넘칩니다. 사장님에 대한 이미지는 능력은 좋을 지 모르겠는데, 죠낸 악당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한나라당에는 쪼잔하게 궤짝따위 취급안하고 대인배스럽게 차를 통채로 주고받는 "부패"라는 이미지가 붙어있습니다. 이명박은 이 두가지 안좋은 이미지를 다 짊어지고 있어요.

배경에 이미지를 추가하시기를 건의합니다.
Commented by 은혈의륜 at 2008/06/18 10:03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음 'ㅅ' 그나저나 위에서도 나왔듯이 물대포 뿌린게 확산 원인이라고 생각함 'ㅅ' 그 전만해도 그렇게 큰일은 안벌어졌으니까(...) 결국은 의견 표출하는데 정부가 그걸 안듣겠다는 의지를 담아서 물대포쏘고 방패로 찍었으니 국민은 열받음 'ㅅ' 집회확산.
Commented by eternium at 2008/06/18 10:19
뭐,국민의 의사나 국민들이 하고 싶은 말들을 철근을 씹어먹듯이 씹어먹으니까.....그러니까 우리 국민들이 열 받은 것이겠지요.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기언코 그런 정책들을 추진하려고 하니.....
글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정시퇴근 at 2008/06/18 10:46
폭탄은 남아 있습니다. 고시는 했지만 관보개제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번 굴욕추가협의 요청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으로서는 더이상 물러주기가 힘드니...

아마 다시한번 거대한 촛불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예상과 희망이 있습니다. ^_^;
Commented by 은현 at 2008/06/18 12:27
한줄 요약 배후는 이명박
역시 생각은 깊이 해야 된다능 ㅇㅅㅇ
Commented by 역성혁명 at 2008/06/18 13:06
원인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6/18 14:13
자 이제 귀하의 시험성적이 올에이뿔이 뜨기를 기대하겠음.[....]
Commented by 이녁 at 2008/06/18 15:48
갑자기 무슨 말씀을-_-;;

어쨌든 그건 무리임. 고학번들, 석사뛰는 선배들이 듣는 수업으로 도배했뜸
Commented by 마나™ at 2008/06/18 15:27
글은 둘째치고 오른쪽 위에 쇠사슬 차고 술에 쩐 호로의 모습이 더 인상깊다능
Commented by 이녁 at 2008/06/18 15:48
호로 아니거든요
Commented by 마나™ at 2008/06/18 15:54
그럼 동방캐릭터? 그쪽은 잘 몰라서.........ㅡㅡ 대충 비슷하게 보이는 쪽으로 찍었더니;
Commented by 작은소망의아스카 at 2008/06/18 17:12
동방프로젝트에서 오니(도꺠비)인 스이카 입니다. 호로는 아니에요 @_@;;;
Commented by 요츠바랑 at 2008/06/18 15:53
차분하게 잘 분석한듯. 사실 나는 신분상(...) 정치적 이슈에 관해서는 발언을 꺼리는 편이지요.
Commented by asdf at 2008/06/18 18:12
근데 최근에는 화물연대나 건설노조 파업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지고(예전에는 이런일 생기면 다 욕했는데)

여전히 시위에 참가하려는 움직임이 많은걸 봐서는 토양에 아직 불만의 불씨가 남아있는듯

문제는 2MB정부가 이 불씨를 잡을 수 있느냐인데 지금까지 보여준건 계속 장작을 던져준 모습이니-_-
Commented by 막장인생 at 2008/06/19 15:56
매번 잘읽고 갑니다~

슬슬 세부적인 내용들이 나올텐데 다음글이 기대되네요..ㅎㅎ
Commented at 2008/06/22 11:2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이녁 at 2008/06/22 11:39
자퇴크리 ㅠㅠ
Commented by 아이비 at 2008/06/22 16:59
이런 감정이 미안 할 정도로 재미있고 흥미롭게 봤습니다.뭐랄까. 고등학교때 한참 보던 프랑스혁명 분석해 놓은 글을 읽는 기분으로. 체크해 두고 생각 날 때마다 보겠습니다. 이념과잉의 시대라는게, 뜨끔하네요. 글 읽으면서 그저 뭉쳐서 까맣던 감정들이 잘 정리되고 단단해졌습니다. 다음글도 기대하겠습니다.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8/08/12 10:33
재미있고 많이 생각하면서 이 글을 읽었던 사람입니다. 제 동아리에서 촛불시위에 대한 발제를 하려고 하는데 참고하려고 합니다. 혹시 불편하시다면 이 댓글이나, 제 블로그에 답글로 달아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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