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와 계몽
Ⅰ.

 내가 이런 글을 쓰게 되다니.

Ⅱ.

 뒤늦게 이오공감을 뒤적이다 허지웅님의 을 발견하고 몇자 끄적인다. 부디 허지웅님에게 큰 실례가 안 되기를 바랄 뿐이다.

Ⅲ.

 허지웅님 블로그에 달린 덧글이나 트랙백을 보면 글을 둘러싼 논쟁의 초점은 비폭력에 맞추어져 있는 걸 알 수 있다. 허지웅님의 글 제목도 그렇다. 그러나 내가 허지웅님의 글에서 주목한 건 비폭력이냐 폭력이냐, 혹은 시민들의 물리적 행동이 정당한가 여부가 아니다. 허지웅님이 반복해 사용한 '우리는 가짜 세계에 살고 있다.' 이 문장이다.

Ⅳ.

 허지웅님은 왜 비폭력을 쉽게 말하지 말라고 하는가? 그 이유는 우리가 가짜세계, 거짓된 평화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허지웅님에 따르면 거짓된 평화의 세계에서 비폭력은 한없이 아름답고 정당해 보이지만 그건 한없는 패배주의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진실을 아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진짜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진짜세계를 용기있게 본다면 함부로 비폭력을 논하지 못할 것이다. 나(=허지웅님)는 가짜세계가 싫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허지웅님의 글은 이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글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는 지금, 절실한 혁명과 유약한 개선의 갈림길에 서 있다. 허지웅" 결국 진짜세계와 가짜세계를 나눈 뒤, 가짜세계에 안주해 비폭력을 외치지 말고 당당하게 진짜세계로 나서자는 것이 허지웅님 글의 핵심인 셈이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읽었다.

(설마 허지웅님이 '평론가' 의 해석이 '원저자' 의 해석과 다르다고 화내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Ⅴ.

 글의 난해함이나 인과구조의 어색함은 일단 접어두자. 비폭력의 당위성에 대한 이야기도 여기서 반복하고 싶지 않다. 내가 허지웅님의 글에서 불편함을 느낀 이유는 따로있다. 바로 진짜세계와 가짜세계를 나누고, 가짜세계에 지긋지긋함(그리고 역겨움)을 느끼는 허지웅님의 생각이다.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진짜세계는 있는가?" 아마 허지웅님이나 허지웅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분들은 MB정부가 국민들을 무시하고, 전경이 시민들을 때리며, 닭장차로 사람들이 끌려가는 세계가 진짜세계라고 생각할 터이다. 맞다. 그 세계는 진짜세계다. 그것도 우리가 보기 싫어하고 때로 애써 회피하는 진짜세계다.

 그러나 그것은 수많은 진짜세계의 한 부분일 뿐이지 가짜세계와 다른 진정한 단 하나의 진짜세계는 아니다. 이게 중요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두 인간이 진짜세계를 알 수 있다는 건 오만이다. 진짜세계는 광화문과 청계천, 청와대 근처에만 있는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어디에서는 추위에 떠는 독거노인이 있고, 세계 어디에선가는 단돈 몇백원, 몇십원이 없어 굶어죽는 아이들이 있다. 

 물타기라고? 글쎄, 그것들도 우리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는 더러운 것들, 가짜 평화에 감추어진 부조리이다. 이참에 한번 추위에 떠는 노인에게, MB심판을 외치며 촛불을 든 시민들의 행위가 진짜세계에 가까울까, 아니면 돈 한푼 주는이 없이 비내리는 6월2일이 진짜세계에 가까울까 한번 생각해 보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혹은 이런 상황은 어떨까. 만약 독거노인 돕기 운동을 열심히 하는 어떤 사람이, 소외된 노인들에게 무관심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당신에게 찾아와 너는 가짜세계에 있다! 그건 거짓된 세계다! 라고 선언한다. 좀 더 스케일을 키우면 "지금 중국 사천성에서 엄청난 사람이 죽어가는데 너는 편하게 잠이 오냐!" 와 같은 비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Ⅵ.

 허지웅님은 아침 직장에 출근해 깔깔거리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듣기 싫고, 그것이 마치 가짜세계인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무일 없이 일상을 즐기는 사람에게도 지겨움과 혐오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잘못인가? 깔깔거리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일상이 가짜세계인가?

 앞서 말한것처럼 진짜세계는 광화문이나 청계천에만 있는게 아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우리가 놓쳤던, 혹은 외면했던 진짜세계가 수없이 드러난다.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그 모든 진짜세계를 챙길 수 없다. 아무리 초인적인 위인이라도 그건 불가능하다. 특히 갈수록 세상이 복잡해지고, 사회모순이 커지며, 동시에 엄청난 정보를 접하는 현대인은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계를 자기 나름대로 재구성한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자신만의 진짜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허지웅님에게 진짜세계는 MB정부와 맞서는 현장에 있을 터이고, 나에게 진짜세계는 학교에 있다. 깔깔거리는 직원들의 진짜세계는 직장과 그 직장에 다니는 반복되는 일상이다. 어디에도 가짜는 없다. 
 
 누군가에게 그 깔깔거리는 직업, 평범한 소시민적 삶이 지긋지긋할지 몰라도, 깔깔거리는 직원에게 그 직업은 자신의 생존과 반쯤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당장 직업을 잃으면 어떻게 살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직원에게 가족이 있다면 또 어쩌란 말인가. 그건 결코 가짜세계가 아니다. 한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생존의 문제가 달린 치열한 진짜세계의 일부다.

Ⅶ.

 이런 지적은 가능하다. 당신의 일상, 당신의 세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공적인 일이 있으니 거기에 동참해야 한다는 지적 말이다. 나 역시 이런 주장에는 동의한다. 모든 사람이 일상에만 매몰된 세상은 진보가 없는 세상, 어두운 세상이다. 때로는 과감하게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밝히기 위해 촛불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는 가짜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진짜 세계로 나와야 한다. 가짜세계에서 함부로 말을 내뱉지 마라" 는 선언으로 이어지면 곤란하다. 그것은 수많은 소시민들의 일상, 소중한 그들의 세계를 순식간에 '가짜세계' 로 바꿔버린다. 동시에 선언자들은 진짜세계를 알고, 나아가 그곳을 향해 가짜세계의 소시민들을 인도해야 할 선구자로 포장된다.

 물론 허지웅님은 겸손한 분이고, 다른 이들의 일상을 폄하할 정도로 상식없는 분도 아니다. 가짜세계와 진짜세계라는 표현 역시 자신의 의지와 동참을 호소하기 위한 일종의 문학적 장치라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짜세계와 진짜세계를 나누는 허지웅님식의 사고방식은 위험성을 안고있다. 비폭력을 말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누군가의 더 큰 폭력을 정당화할 위험성이 있는것처럼 말이다.

Ⅷ.

 그 위험은 바로 오만과 계몽논리다. 자신(들)이 진정한 진짜세계에 있고, 또 자신(들)이 진짜세계를 알 수 있다는 오만, 그리고 그 진짜세계로 다른 이들, 가짜세계에 안주하는 평범한 이들을 인도해야 한다는 계몽논리 말이다. 잘난척하는 당신들의 혀를 뽑아버리고 싶다는 허지웅님의 강한 어조에서 느껴지는 안좋은 냄새는 분노의 냄새가 아닌 오만의 냄새다. 현장의 무거움, 현장의 급박함을 무기로 다른 이들이 구축한 나름의 세계를 무시하는 오만의 냄새다.

 이른바 운동권이 시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오늘날과 같이 몰락한 이유는 그들의 물리적인 폭력성 때문만이 아니다. 자신들만이 옳고 다른이들은 틀리다는 오만함, 그리고 잘못된 이들을 자신들이 이끌어야 한다는 계몽논리 때문이기도 하다. 계몽논리는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을 연대의 대상, 대화의 대상이 아닌 계몽의 대상, 가르침의 대상으로 격하시킴으로서 그들을 소외시킨다. 그리고 그 소외는 결국 자신들이 세상에서 소외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곤봉과 방패 앞에 쓰러진 '우리'가 일반 시민, 선량한 시민인 것처럼 직장에서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웃고, 인터넷에서 상황을 접하며 비폭력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 역시 일반 시민, 선량한 시민, 바로 시위현장에 있는 시민들과 같은 바로 그 시민이다. 당장 허지웅님만 해도 일요일 TV프로그램에 나와 헐리웃 영화,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쇠고기를 강요하는 바로 그 미국의 헐리웃 영화를 웃으며 소개하지 않았던가? 

Ⅸ.

 영화 평론가라는 허지웅님의 직업과, 그 직업에 충실한 일상을 비웃을 수 없는 것처럼, 대다수 소시민들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거짓된 삶으로 깎아내려서는 안된다. 촛불집회가 지금처럼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는 대다수 소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때문이다. 기말고사를 걱정하는 학생, 야근에 피곤해하는 직장인, 저녁거리를 생각하는 주부들의 참여가 촛불집회를 아름답게 만든 것이지 몇몇 선각자들의 결의넘치는 투쟁이 촛불집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배후세력이 있는것도 아니다. 진실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이 집회를 주도한 것도 아니다. 누군가가 가짜세상에 살고있는 사람들을 깨우쳐서 사람들이 거리로 나온것도 아니다. 누구는 자녀의 건강을 위해, 누구는 정부의 실정에 분노해서, 다른 누구는 전경의 폭력에 항의하기 위해 나왔다. 수직적인 계몽의 논리가 아닌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연대의 움직임이 촛불집회를 만든 것이다. 계몽주의는 독이다. 비록 거리로 나오지 못하더라도 시위대를 응원하고, 비폭력을 간절히 바라는 평범한 이웃들을 소외시키는 위험한 독이다. 그리고 그 독이 퍼지면 촛불시위도 서서히 죽는다.

Ⅹ.

 계몽이 아니다. 연대다.
by 이녁 | 2008/06/02 23:38 | 무 거 움 | 트랙백(2) | 덧글(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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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낯선 이름의 이글루 at 2008/06/03 02:30

제목 : [긴급] 강재섭, 이명박, 박근혜가 손잡았다.
촛불문화제는 불법이다. 그리고이명박 정부는 위헌이다.꼭 읽어 주십시오. 이번 사태와 이명박 정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곧 힘입니다! 힘들고 귀찮으시더라도 아래 글들을 세세히 읽고 완전히 이해하셔야 시위대 해체와 국민 분열만을 조장하려는 수구 언론과 보수적 국민 그리고 복지부동 정부의 수작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아래의 글들은 비록 길고 지루한 내용뿐이지만 이번 사태와 광우병 그리고 쇠고기 협상과 검역 현실에 관해 모......more

Tracked from minoci's me2.. at 2008/06/04 03:36

제목 : 민노씨의 느낌
어떤 댓글을 읽다가... : 지적 현시욕(유사표현 : 지적 현학취미, 지적 딸딸이즘)은 대개의 경우, 무식한 용기와 견줄만하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고, 내가 이해를 못하는 경우는 더 많겠지만... : )...more

Commented by 미친과학자 at 2008/06/02 23:40
마지막줄 가슴에 꽂힙니다.
Commented at 2008/06/02 23: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6/02 23: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이녁 at 2008/06/03 23:32
고쳤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時水 at 2008/06/02 23:56
잘 읽었어요. 역시 마지막줄이 가슴에 와닿네요.
Commented by 지나가던이 at 2008/06/03 00:03
좋은 글입니다.
Commented by 에제 at 2008/06/03 00:08
마지막줄이 핵심이네요.
Commented by 낭만여객 at 2008/06/03 00:13
좋은 글입니다. :D
Commented by 혜현 at 2008/06/03 00:18
마지막 줄이 와 닿습니다.
Commented by 공감합니다 at 2008/06/03 00:22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남과 다르고, 남보다 뛰어나고, 남보다 멋있어 보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기 쉽지요. 그렇게 부추겨지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지금 우리는, 칭찬받고 싶다는 욕망을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보다 잘나고, 남보다 멋있어서, 남에게 칭찬받고 싶어하는 그 욕망을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앞서기 위해서, 혹은 '이기기 위해서' 하고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시위에 나가지 못한(혹은 않은) 사람이 심리적으로 부채감을 지니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시위에 나가서 참여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혹은 않은)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기 조심스럽지만)우월감에 근거한 구별의식을 갖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조금 자제해야 하는 편가르기라고 생각해요. 너와 내가 똑같지는 않더라도 함께해야 할 때니까요. : )

그래서 글 너무 잘 읽고 갑니다. 읽고 싶은 글이었어요.
Commented by Ha-1 at 2008/06/03 00:25
글솜씨가 갈수록 빛이 나네염....
Commented by Josée at 2008/06/03 00:27
아 훌륭한 글이네요.
Commented by 낭만여객 at 2008/06/03 00:38
아무래도 이녁님은 정치를 해야 할 듯. 괜찮은 중도정치인 하나 만들어지는 게 보고 싶군요 ㅎ
Commented by 이녁 at 2008/06/03 23:32
저는 유유부단하고 겁이 많아 정치는 못할겁니다
Commented by 블랙체리 at 2008/06/03 01:12
잘 보고 갑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던무명 at 2008/06/03 01:14
인민을 가르치려 들지 마라, 인민에게서 배워라
Commented by 지나가던무명 at 2008/06/03 01:15
누가 한 말인데 생각이 안 나네여 'ㅅ';
Commented by sigmund at 2008/06/03 01:18
잘 썼삼. 명문이네그려.
Commented by 루시앨 at 2008/06/03 01:47
글 잘 읽었습니다만, 제가 독해를 잘못한건지도 모르지만, 논리의 모순이 있는 것 같아 약간 무례하지만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왜 글을 반에서 끝내셨나요?
다른 부분은 물타기가 아니라고 여기지만, 마지막 부분 VIII.와 X. 단락은 죄송하지만 부연 없이는 물타기로 여겨질 수 밖에 없군요.

본 글에서 이녁님의 논리는 전체적으로 칸트의 인식론에 대한 현대적 해석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칸트의 인식론에 대한 현대적 해석은, 사적으로는 칸트의 인식론이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통일을 통해 물자체에 대한 인식론의 통합을 이루어 냈지만, 현대적 해석으로는 역설적으로 칸트적 의미의 Episteme 자체가 개인별로 재구성된다는 논리이지요.

문제는, 그러한 재구성 속에서 소통에 대해 어떠한 비판적 고찰 없이 "그저 촛불 시위를 통해 다양한 Episteme의 통합이 이루어진다"는 식으로 (헤겔 류의) 변증법적 미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글 속에서 Episteme의 통일 및 그에 대한 선점에 대해 비판했다면,

1. 이 글의 VIII 단락에 나타난 변증법적 미학의 언급과, 이것이 가진 폭력성(이는 이녁님이 비판하신것과 동일한 비판점입니다.)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점은 글의 인식론적 모순이라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
2. 서로 다른 Episteme 속에서 소통, 연대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밝히지 않은채 연대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서로간의 Episteme가 다르다고 글에서 가정하셨으니, 연대의 시작점이 어디인지에 대한 언급해 주셔야지, 그것이 없이는 도대체 뭐가 폭력이고 뭐가 소통인지에 대해 기준이 없으니까요.)에 대해 밝혀주셔야 할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이녁 at 2008/06/03 22:55
죄송합니다만 저는 칸트나 헤겔을 모릅니다. Episteme라는 말도 처음입니다. 부디 좀 쉽게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Commented at 2008/06/03 02:0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이녁 at 2008/06/03 23:32
고쳤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at 2008/06/03 02:1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6/03 06:0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세시아 at 2008/06/03 11:42
제가 쓰고 싶던 글을 훨씬 더 잘 써 주셨군요. 제가 보기에 허기자님의 글은, 이전 '스피드 레이서'를 보고 눈물을 흘렸던 그 맨탈리티, 그대로 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별밤 at 2008/06/03 12:49
결론을 '연대'라고 잡으셨을 때, 예전 포스팅에서 연대 개념의 무분별함에 대해 말씀하셨던 게 생각나서 살짝 웃음이 나왔습니다(비웃음이 아닙니다. 확실히 글은 조심스러워지는군요-_-;;).

비폭력-폭력의 이분논리가 가짜세계-진짜세계의 논리로 이어짐으로써 악-선으로 갈라버리는 구조인 건 사실입니다. 허지웅 님의 울분도 이해하지만, 이런 함정을 모를 분이 아닌데 가차없이 뛰어드는 걸 보면 상황이 급박하긴 한 탓일 겝니다.

요즘 허지웅 님의 논리에서 더욱 신경쓰이는 건 '지도부의 필요성'을 주장할 때입니다. 지금 정부는 촛불의 '지도부'가 나타나길 간절히 바라고 있지요. 지도부만 제거하면 촛불은 와해될 꺼라고 믿고 있었는데, 지도부도 배후도 없는 네트워크다 보니 손을 쓸 수 없었지요. 이 상황에 지도부가 출범한다면-그리고 더 나아가 '사수대'까지 꾸려진다면-시민 네트워크는 비폭력 평화라는 명분을 상실하고 지지자가 사라지며, 정부는 촛불을 와해시킴은 물론 제2,3의 촛불을 제거하기 위한 법률적 제도적 장치를 통과시키려 들겠지요.

대중의 현명함을 보여주어야 할 때 같습니다.
Commented by dma at 2008/06/03 13:56
이녁님 글만 읽어 보니(허지웅님 글은 가독성이 나빠서 읽기가 싫다능) 진짜 세계에 동참하지 않은 이들에 대한 분노는 어째 전체주의 발상 같다능.
Commented at 2008/06/03 22:3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까칠맨 at 2008/06/04 00:01
글 잘보고 갑니다. 허 기자님의 말씀은 읽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것 같습니다. 이녁님 말씀도 이해는 하지만
자칫 집단주의,군중심리를 일으킬 수 도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네요...물론 현 정권의 오류를 간과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아니지요....
제 사견으로는...이 세상에는 가짜 세계는 없다고 봅니다.
전부 자신의 앞에 처해진 현실 세계,진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이렇게 보이네요 ^^
문득 갑자기 매트릭스가 생각나는 건...후후...
Commented by willowkiss at 2008/06/04 02:11
허지웅님 글 읽고 공격 엄청 당하겠다 싶었는데.. 시위 한번 다녀온 사람(특히,끝까지남은사람)들은 아무래도 날 밝고 그래도 살아가려고 가게문 열고 회사 출근하고 유유히 걷는 사람들에게서 이질감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집단이 형성되어 버리면 자연스럽게 같은곳에 끼지 못한 무리들을 향하게 되는것 같아요 시위참여 하는것만이 , 참여한 사람만이 진짜를 알고있다. 라는 논리로 비방하는 태도보다.. 서로 격려하고 관심 잃지 않고 함께 갔으면 좋겠네요(사실,서명운동이나 자금,물품 후원해주고 시위할때 집에서 상황 지켜보면서 문자로 계속 알려주시는 분들도 있고, 변호사분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람들의 사건,사고 수집하면서 방법을 모색하고 있고..) 우리 안에서 갈라서버리면 이도저도 아니게 되버릴것 같아서 두려워요 , 이 글에 대해 좀 방향이 빗나간 덧글 같지만 글 읽다가 괜히 안타까워져서.. -_-
Commented by 민노씨 at 2008/06/04 03:27
"에피스테메는 일정한 시기에 있어 인식론적 형상들, 학문들, 그리고 형식화된 체계들을 낳게 하는 언설적 실천들을 결합하는 관계들의 총체이다. .... 에피스테메는 매우 다양한 학문 영역들을 넘나들면서 하나의 주체나 정신 또는 어떤 시대의 지배적인 통일성을 나타내는 인식의 한 형태나 합리성의 한 유형이 아니다. 그것은 언설적 규칙성들의 수준에서 학문들을 분석하고자 할 때 제반 학문들 사이에서 일정한 시대 동안 발견될 수 있는 관계들의 총체이다." (미셸 푸코, 지식의 고고학, 갈리마르판. p.250 중에서) 이처럼 푸코는 에피스테메를 일정한 시대 동안의 언설 = 실천을 결합하는 관계들의 총체 (서구 사상에 있어 여러 시대들을 특징지우는 관념적인 층)로 파악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역사적 분석이란 곧 고고학적 모델을 발견해내는 일이었다." - 이광래, (제6장) 인문과학의 고고학, '미셸 푸코' (민음사판. p.145) 중에서 재인용

저로선 위 에피스테메에 대한 푸코 자신의 설명에서 연상되는 책이 하나 있는데요. 물론 푸코의 설명을 다시 설명하는 이광래의 짜깁기적 설명에 의한다면, 정확히 부합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E.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책은 정말 걸작입니다)입니다.
혹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아, 그리고 '에피스테메'는 푸코가 유행(말 그대로 그저 유행의 수준이지, 이 용어를 사용해서 어떤 지적 자극을 주거나, 깊은 울림을 주는 경우를 개인적으로 접한 바 없습니다)시킨 용어입니다.
제가 읽은 제한적인 체험치 내에서 '에피스테메'를 푸코와의 연관 하에서 언급하지 않는 경우는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 역시 루시엘님의 논평은 아무리 읽어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과문해서 그런지 '에피스테메'를 어떻게 이해하시고 쓰신 논평인지도 잘 파악이 안되네요. ^ ^;

추.
저도 허지웅씨 글 참 좋아하는데, 이번 글은 뭐랄까 마음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머리로는, 그러니 방법론으로는 채택하기 힘든 견해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더만요.
그런데 복귀하셨군요.
반가운 마음에 댓글까지 읽었네요. : )
Commented by ZZiRACi at 2008/06/07 16:49
허지웅씨가 진짜 세계라고 말한 것은 시위대에 참가하고 투쟁하는 세계가 아니라고 봅니다. 가짜 세계는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워'라는 아름다운 말이 힘에 의해 악한 일에 수단으로 쓰이는 세계입니다. 도덕은 사실, 기득권의 명분일 때가 많습니다. 비폭력을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이 도덕적이거나 아름다워서라는 소시민적 감상에 젖어 스스로를 약하게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도덕적으로 길러지고, 훈육되어 왔습니다. 적어도 저는 촛불집회의 현장에서 내가 더 강해져야 하는 이유를 발견합니다. 물리적 힘이 아니라, 진짜 힘 말입니다. 비폭력이 우리의 소중한 뜻을 위해서 물리적 힘을 남용하지 말자는 뉘앙스를 넘어, 도덕이나 법보다 더 먼저인 나의 근원적 힘에 대한 권리를 제한하려는 비폭력이라면, 비폭력이라는 외침은 폐기해야 합니다.
Commented by ㅇㅇ at 2008/06/11 11:10
여기 몇몇 분들은 꼭 미시마 유키오처럼 얘기하시는 군요
미시마 유키오도 '비폭력 반대주의자'였죠
논리는 여러분과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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